사진ㆍ글 / 김 홍 한 목사
포도나무 십자가
선다는 것은 신기한 것, 어린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기가 서는 때가 있다. 아기는 스스로가 그것을 신기하게 여기며 아주 좋아한다.
선다는 것은 정신이 든다는 것, 천하장사도 정신을 잃으면 설수 없다. 얼빠진 얼간이는 결코 설 수 없다.
사람이 사람구실 하려면 몸이 서고 맘이 서고 영이 서야 한다. 나라와 민족이 서려면 뜻이 서야 한다. 뜻이 서지 못하면 종살이 밖에 할 것이 없다.
포도나무는 홀로 설수 없는 나무다. 그래서 기둥에 붙들어 맸다. 포도가 익을 때면 농부는 줄기에 한 바퀴 돌려 껍질을 벗겨낸다. 영양을 열매에 가두기 위함이다. 억지로 일으켜 세워져서 빼앗길 수 있는 것은 모두 빼앗기고, 이제 늙어 생산량이 줄면 가차 없이 베어진다. 함석헌은 우리나라를 “늙은 갈보의 나라”라고 했는데 포도나무의 형편이 마치 늙은 갈보 같다.
이제 생을 마치고 베어진 포도나무, 이 포도나무로 십자가를 만들었다. 너무 힘들어서인지 몸이 꼬여있다. 껍질이 도려내진 곳마다 두꺼운 마디가 생겼다. 건조 과정에서도 힘들어서인지 갈라짐이 심하다. … 그래도 죽어서라도 홀로 설 수 있으니 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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