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지역 목회자 긴급 투고 ] 정죄 대신 애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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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지역 목회자 긴급 투고 ] 정죄 대신 애통을
  • 합동투데이
  • 승인 2020.02.2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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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창욱목사(대구새민족교회)
백창욱 목사 (대구새민족교회)
백창욱 목사 (대구새민족교회)

31번째 확진자가 나타나기 전, 지인들과 나누던 대화가 생각난다. 확진자도 소강상태였고, 마스크를 쓰는 사람도 현저히 줄어들어서 이제 대구는 한 고비 넘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월 18일, 31번째 확진자가 나타나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알고 보니 이 환자는 시한폭탄이었다. 전국을 종횡무진했다. 게다가 이 환자를 통하여 신천지 대구교회와 청도 대남병원이 대규모 확산의 진앙지임이 새로 밝혀졌다.

18일 이후 확진자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마치 신기록 경쟁을 하는 듯이 나날이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사망자도 12명이나 됐다.(20.2.26 현재) 실로 온 나라는 초비상상황에 빠졌다.

대구 거리는 순식간에 텅 비었다. 생업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다. 나도 며칠 째 모든 외부활동을 중단하고 집과 교회만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주일예배 참석은 자율에 맡겼다. 평소의 절반만 참여한 예배에서, 교독문, 찬송 등 회중이 참여하는 순서는 모두 생략하고, 목사 홀로 진행했다. 교회를 소독하고 교우들은 마스크로 중무장하고 예배했다. 점심도 생략하고 교우들은 다른 주일보다 훨씬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 급작스럽게 돌변한 상황에 직면하자니, 몇 일 전, 고비는 지나갔다고 한가하게 말한 게 참 머쓱했다. 사람이란, 정말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인생이라는 격언을 다시금 되새겼다.

뉴스앤조이가 2월 20일에 올린 동영상이 화제다. 저명한 목사들이 코로나 19에 대해 설교하는 동영상이다. 클릭하자마자, “따라합시다. 전염병은 하나님이 주신다” 라는 어떤 목사의 설교 장면이 나왔다. 첫 화면을 독자를 자극하는 영상으로 조회수를 늘리려는 편집기술이지만, 그렇게 말한 것도 사실이었다. 동영상 제목은 “코로나19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이다. 제목 끝에 ?과 !을 함께 붙인 것으로 볼 때, 이렇다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뜻을 풍긴다.

하여간 여섯 명의 목사 설교를 압축, 편집했는데, 놀랍게도 설교 요지는 같았다. 중국에서 코로나 19(어떤 목사는 우한 폐렴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야단이다)가 처음 발생했는데, 그 이유는 시진핑이 중국에 있는 교회를 크게 탄압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한다. 시진핑이 교회를 폐쇄하고 심지어 폭파하고 선교사를 추방한 죄에 대한 징벌이라고. 그 때문에 중국에 전염병이 퍼지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이라고. 전염병이 발발한 우한은 교회 핍박이 가장 심한 도시라서 그렇다고. 여러 사람이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골자는 중국 당국이 교회를 탄압하는 것에 대한 징벌이라고 똑같이 말하는 것을 봤다.

나는 목사들 진단의 사실여부와 별개로, 여섯 사람이 똑같은 요지로 말하는 것에 더 놀랐다. 어디 컨트롤 타워가 있어서 지시가 내려오는 건지, 성령이 이들에게 똑같은 감동을 준 건지, 참으로 의아하다.

다행인 것은 중국 선교사 두 사람이 건강한 관점을 제공해 주었다. 선교사 A는 “한국교회가 하나님 이름으로 온갖 저주와 판단, 정죄하는 것을 너무 쉽게 한다”라고 했고, 선교사 B는 “시진핑에 대한 벌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시진핑이 코로나에 걸려야지, 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나? 교회를 핍박해서 전염병이 생겼다고 말하는데, 그렇게 사건 하나하나에 대해 우리가 정답을 해석해 내려고 너무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구약을 보면, 심판의 방법으로 염병이 있는 것은 맞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여러 번, 하나님이 전쟁과 기근과 염병으로 내리칠 것이라고 했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염병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셨다. 아마도 동영상에 등장한 목사들은 이런 사례에 근거해서 전염병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분들이 한 가지 놓친 게 있다. 이 때 염병 심판의 대상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이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않는 백성들에게 내린 심판이란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는 중국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코로나 전염병을 당한다는 말은 맞지 않다.

실제로 누가 전염병에 희생되는가를 보면 명확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망자 12 명 중 7명이 청도 대남병원의 정신병동 환자들이다. 입원환자 102명 중 한 명 뺀 전원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오랜 세월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고, 가족으로부터 격리돼 사랑과 정을 받지 못하고, 인체면역력도 크게 떨어진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희생자가 됐다.

살아서도 외면 받고 쓸쓸히 세상을 떠난 이분들을 애도한다. 안타깝게도 어떤 재난이 벌어졌을 때 실제 희생자는, 재난 원인과 아무 상관도 없고, 책임도 없는, 단지 죄라면 약한 게 죄일 뿐인 사람이 제일 먼저 피해를 입는다. 이렇게 고통당하는 사람에 대한 연민이나 사람에 대한 예의없이, 함부로 하나님의 심판이니, 징벌이니 하는 말은 아픈 상처를 덧나게 하는 일이다.

다행히도 23일 주일, 대구의 목회자들은 심판론이 여론의 비판을 받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아니면 원래 신학 소양이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설교 요지가 좋은 쪽으로 이동했다. 고통당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연민이 우선해야 하고, 이 일로 당신의 백성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맞이하자고.

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부르짖는 목사들을 보면서, 일세기 율법학자들이 떠올랐다. 그들도 율법 전통에 얽매여서 일상적으로 민중을 재단하고 배제해서 죄인으로 만들었다. 그 정죄를 기반으로 자기들의 지위와 권력을 유지했다. 예수는 죄의식에 빠져 있는 민중들을 해방하기 위해 율법학자들과 투쟁했다. 그 결과가 십자가 죽음이다. 예수를 따르는 우리의 눈은 세상 최일선에서 사람들의 뿌리 깊은 욕망이든, 자본주의 탐욕이든, 지방정부나 중앙정부의 실책이든 간에 일차로 희생당하는 민중을 향해야 한다. 예수가 그렇게 사셨기 때문이다.

지금 코로나 19는 온 나라에 발등의 불이 됐다. 중국도 이제는 한국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우리로서는 이제 탁상공론, 한가한 담론을 이야기할 계제가 아니다. 이 참에 신천지가 재앙의 진앙지로 드러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뜻밖으로 불거진 신천지 사태가 어떻게 귀결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동안 신천지는 가정과 교회를 파괴하는 암적 존재였다. 이제는 교회를 넘어 사회에까지 공공의 적이 됐다. 어떻게 이단사이비를 척결하고 교회를 정화하실지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이 역사하시기를 기도한다. 바라기는 신천지의 해악이 제대로 심판받기를 염원한다.

하지만 제일 최우선으로 할 일은 코로나 19를 멈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전염병의 속성상 방심하면 걷잡을 수 없지만, 조심하고 의식하고 방역 당국이 하라는 대로 하면 별 탈 없기도 하다. 적당한 경계는 필요하지만 필요 이상의 두려움 공포는 분별해야 한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서로를 믿고 단결하여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혐오와 정죄 대신에 예방하고 상호 배려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는 게 급선무다.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비난 정죄가 아니라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사순절이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희생하시어 세상을 구하셨다. 우리도 예수의 고난을 묵상하며 세상을 섬기자. 그렇게 위기를 극복하자. 이 참에 연속으로 출몰하는 바이러스에 대비하는 의료체계 공적기반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기회가 되면 더더욱 좋겠다.

주님, 우리를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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