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토론] 수도원 운동은 각각이 종교 개혁이었나?
상태바
[신학토론] 수도원 운동은 각각이 종교 개혁이었나?
  • 합동투데이
  • 승인 2020.09.20 09: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현익 선교사(GMS, 파리)
권현익 선교사
권현익 선교사

<수도원 운동은 각각이 종교개혁이었다>는 어느 목사님의 글을 읽고 시작된 토론을 제가 정리해서 올려 봅니다.

1) 수도원 운동이라 함은 어느 시대, 구체적으로 누구에 의해 시작된 운동인지를 구체화 할 필요가 있습니다. : 왜냐하면 제가 연구하고 있는 11세기 이후의 수도원 운동은 결국은 성모 숭배와 성상 숭배 신학으로 연결됩니다. 성 도미니크나 성 프란체스코는 그들이 어떤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성모를 실제적으로 만나 대화를 하고, 묵주를 받아 묵주 기도를 하는 등 그들의 행보는 결국 성모 현현 신학의 시작을 열어 놓았다는 점에서 사도적(성경적) 신앙과 모순이 됩니다.

2)종교개혁이라 함은 '로마교회 내에서의 도덕적인 개혁'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16세기 종교개혁을 말하는 것인지 그 정의를 분명하게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을 의미한다면 종교개혁은 수도원 운동과 무관한 사도적 신앙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1. 종교개혁 시대의 교회는 과연 사도교회와 연결되어 있고, (로마교회와) 독립적으로 존재하였는가?

답 : 네 그렇습니다. 벨직 신경이 이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벨직신경 제 27 조 보편적 기독교회(The Catholic Christian Church)(손재익목사 역)

우리는 하나의(one) <보편적(catholic)>, 혹은 <우주적인(universal) 교회>를 믿고 고백합니다.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고, 성령님으로 거룩하게 되며(sanctified) 인침을 받아(sealed), <그리스도 안에서>(개인주석 : 성모나 성인들의 도움 없이) <온전하게 구원>받을 것을 바라는 <참된> 기독 신자들의 거룩한 회중(congregation)이며 모임(assembly)>입니다.

이 교회는 <세상의 시작부터 있어 왔으며>, <세상의 끝날까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subjects) 없이는 계실 수 없는 영원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비록 잠시 동안 사람의 눈에는 아주 <미미하게 보이고>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이 거룩한 교회는 온 세상의 격노(fury)에 대항하여 <하나님에 의해 보존될 것입니다(preserved)>. 그래서, 아합의 폭정 동안에도(during the perilous reign of Ahab) <주께서는> <바알에게> 무릎을 끓지 않고 절하지 아니한 <칠천 명을> <자신을 위해 남겨 두셨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거룩한 교회는 어떤 특정 장소나 혹은 어떤 인물들에게 국한되거나 제한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고(not confined or limited), <온 세상>에 걸쳐 <퍼져 있고 흩어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믿음의 능력에 의해서 한 분이시고 동일하신 성령님 안에서 마음(heart)과 뜻(will)으로 연결되고 연합되어 있습니다(joined and united).

그리스도의 교회는 <세상의 시작부터 있어 왔으며>, <세상의 끝날까지 있을 것>입니다. 잠시 동안 사람의 눈에는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그리스도께서 존재하지 않으신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교회도 항상 존재하여 왔습니다. 

 

2. 개혁교회만이 참 교회인가?

'개혁교회'라 함은 오늘날의 ‘개신교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세기를 막론하고 <거짓교회의 가르침에 저항(protest)>하며, <인위적인 교리를 거부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유일한 규율>로 여기는 교회로 제한하도록 하겠습니다.

혹 개혁교회만이 '참된 교회'라고 주장하는 것은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식의 배타적이며 교만한 태도로 보일 수 있습니다.

<참교회>와 <거짓 교회>의 구분은 제가 속한 개신교회가 참 교회이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감 또는 자만심에서 의도적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연구하고 있는 8세기 이후 개혁교회(로마교회가 다르게 독립적으로 존재하였던 교회 의미)들이 교회를 이렇게 둘로 구분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딤후 1:5 ) 즉, 거짓이 없는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는 참교회와 거짓교회를 확장해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며, 16세기 종교개혁자들도 지상의 교회를 이 둘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벨직신경 제29장 <참 교회의 특징 및 거짓 교회와의 차이점>

우리는 마땅히 성실하고 주의 깊게 <참 하나님의 교회가 무엇인가>를 <말씀을 통해> 알아야만 한다고 믿는 바인데, 그 이유는 이 세상에 <모든 이단도 스스로 교회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말하는 것은 위선자들, 비록 외형적으로는 교회 안에서 선한 성도들과 함께 존재하면서 실상은 참 교회의 요소가 아닌자들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 교회>라고 부르는 <온갖 이단들로부터> <참 교회의 하나됨>이 반드시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 교회임>을 알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은 다음과 같다. 만일 <복음의 순수한 교리가 전파>되고,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성례가 순수하게 이행>되며, 교회의 가르침으로 인해 <죄를 징벌(권징)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이는 참 교회에 속하는 것이다. 요컨대, 모든 일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뤄지며 동시에 말씀에 어긋나는 모든 일이 제거될 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유일한 머리되신 분>으로 인정됨으로 그 누구도 이 분에게서 벗어날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에야만 참 교회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참 교회와 거짓교회의 구분은 내가 속한 교회가 참된 교회라는 자만심을 갖게 한다기 보다는 말씀에서 벗어난다면 이단이요, 스스로 교회라고 부르는 자들의 모임이며 그리스도와 무관한 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운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3. 사도적 교회는 이념적이며 추론에 의해 만들어진 교회인가?

“사도적 교회”라 함은 일종의 이념형이다. 개혁교회가 모방한다는 사도적교회는 실제 역사상의 사도시대의 교회들과 신앙의 행태와 성경의 교훈에 따라서 추론해낸 것이다.” 라는 주장에 대하여…

 

1) 먼저 우리의 신앙 고백이 사도적 교회와 다르다면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9)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엡 2:20)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현재 내가 믿고 있는 신앙고백이 사도들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지를 살피고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2) 사도적 교회가 추론에 의한 이념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개혁교회가 16세기에 시작되었다면 16세기에 시작된 교회가 사도적 교회의 가르침을 어떻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사도적 교회의 가르침은 사도들의 가르침이 로이스와 유니게에게 그리고 디모데에게 전달되었듯이,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계속적으로 계속적으로 신앙이 계대, 계승되었다면 후대들이 논의해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 주께서 사도들에게 ‘가르치고, 지켜게 하라’는 대명령이 지금까지 계속적으로 이어져 왔던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주께서 당신의 참 교회 가운데 항상 함께 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참교회가 사도시대로부터 단 한순간도 사라지지 않고 어떻게 계속적으로 이어져 왔는지를 설명하겠습니다.

 

4. 끊이지 않고 계속 되는 참 교회

사도신경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가 ‘카톨릭교회’ 즉, ‘우주적인 교회’라고 고백하는 것은 단순히 신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원성과 그의 교회의 영원성을 믿는 신앙에서 나온 신앙고백입니다. 그리스도가 그의 순수한 백성 없이 존재하지 않음을 고백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개신교 역사가들은 참 교회의 역사를 추적하는 일에 무관심하고 게을렀습니다.

참 교회가 존재하였음을 증명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참교회의 존재를 알리는 역사적 기록과 그들의 신앙고백입니다.

만약 이 역사만 존재한다면 자신들의 교회가 참교회임을 선언하기 위하여 후대들에 의해 조작된 역사라고 공격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박해자의 역사 가운데서도 참교회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크로스체크(cross-check) 혹은 더블체크(double check)로 객관적이고 분명한 역사적 사실로 승인될 것입니다.

로마교회가 교황을 ‘사도적 계승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도들의 신앙을 일점 일획도 놓치거나 보탬없이 그대로를 보존하여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가르침인 성경과 다른 신앙을 갖고 있기에 우리는 사도적 계승자라는 것을 부정합니다. 즉 성경의 가르침과 단 하나라도 다른 것이 있다면 아무리 사도적 교회의 후계자라고 주장할지라도 거짓교회일 것입니다.

17세기 프랑스 개혁교회가 왕성하여 지자, 로마교회가 프랑스 개혁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루터 이전에 당신들의 교회는 어디에 있었으며, 어떤 목사들이 있었는가?”

1637년 프랑스 몽펠리에 목사인 다비드 외스타슈 목사가 다음과 같은 제목의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로마(교회)가 우리에게 루터 이전에 당신들의 교회는 어디에 있었으며, 어떤 목사들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 따르면, “발도인과 알비인의 신앙의 본질과 관련된 교리는 오늘날 우리가 가진 것과 분명한 일치를 보여주며, 사도 시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자, 그렇다면 로마교회에서는 루터나 칼뱅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a) 로앙 아귀에스(1886년) “루터는 발도인들과 알비인들의 사상에 영감을 받았다”

b) 리옹의 로마교회 역사가 클로드 루비(1553-1613) “루터의 주요 사상적 원리들은 이단 발도인들의 교리적 기초에 충실한 발도인들의 유산에 불과하다”

c) Ghent의 주교 린다누스(1560) “장 칼뱅은 발도인들의 교리를 상속했다”

d) 교황 비오 2세 “칼뱅의 가르친 교리는 발도인들의 교리와 동일하다”

그렇다면 발도인들의 신앙이 12세기 피에르 발도로부터 시작되었다면, 이 또한 사도적 신앙과 무관할 것입니다.

발도인의 신앙고백인 고귀한 교훈은 1100년에 작성된 것으로 보아, 피에르 발도 이전에 이미 발도인들이 존재했음을 증명해줍니다.

테오도르 베즈 “120년 경에 발도인들의 기원이 되는 공동체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계 12:6)는 약속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피에몽 계곡의 보두아 교회는 10세기 이상 그곳에서 존재하였다” - 피에몽 계곡에서만 6세기 이후부터 존재하였다는 말입니다.

b) 나폴레옹이 피에몽 계곡을 방문하여 발도인들 공동체의 기원을 물었을 때, “817년 토리노의 감독 클루드 시대에 이미 큰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라고 대답합니다.

c) 5세기 이전에 기록된 로마교회 문서에 따르면 “ 발도인의 선조인 레오니스트(프랑스 리옹사람들)들은 다음 세가지 이유로 가장 치명적인 이단들이다. 첫째는 그들의 존재는 교황 실베스트(285-335) 시대 혹은 사도 시대로부터 존재하였다. 둘째, 이들이 존재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는 점이다. 셋째, 경건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 프랑스 개혁교회 역사에서나 로마교회 역사에서 공히 프랑스 리옹인들과 발도인(리옹에서 큰 박해로 피에몽 계곡으로 숨어 들어감)의 기원이 사도적 교회에 있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서유럽의 참교회의 기원에 관하여 설명하였는데, 발도인들이 유럽 전체에 어떻게 퍼져 나갔으며, 어떤 지도자들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제 책 “16세기 종교개혁 이전 참교회의 역사”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동유럽에서 그리스도의 참 교회는 누구였는가? 바울인들이라 불렸던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이 존재하였고, 큰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신앙을 지켜 왔음도 제 책에서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5. 순교자도 있었고, 그들의 신앙고백이 현재까지 남아 있음에도 개신교 신학자들은 선조 개혁자들을 인정하지 않는 안타까움에 대하여….

“로마교회에 의해서 이단으로 몰려서 박해 받았던 신앙인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에 대해서는 존중하나 그런 신앙인들을 '이전의 개혁교회'라 일컬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에 대한 반박

루터가 하루는 발도인들의 대표단의 방문을 맞이하였습니다. 발도인들이 들이 들고 온 사본으로 기록된 고대 신앙고백서와 오래전에 자신들이 직접 번역한 성경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그들은 우리 시대에 로마교회에 항거하여 투쟁한 (마르틴 루터보다) 400년이나 먼저, 우리와 동일한 교리의 신앙고백을 갖고 있었던 선조들로서, 우리가 가진 것과 동일한 이유로 박해를 당하고 죽임을 당하였는데, 어떻게 그 선조들을 우리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가 유지되어 오늘 우리들의 시대까지 계속된 것이 아닌가?”라고 고백합니다.

스트라스부르의 마르틴 부처나 외콜람파디우스도 발도인들을 접촉한 이후 루터와 비슷한 고백하게 되며, 발도인들과의 접촉을 통하여 당시 개혁자들은 이전 개혁자들의 존재에 관하여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16세기 종교개혁만이 유일한 종교개혁이라고 알고 있는데, 각 세기마다 종교개혁은 일어났습니다. 지상의 교회가 완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개혁교회에 소속되었던 지도자들이나 신자들이 거짓 복음, 인위적인 교리를 만드는 타락이 발생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타락한 자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그들은 늘 칼과 불로 개혁교회를 다스렸습니다. 가장 왕성하였던 종교개혁은 12세기입니다. 얼마나 개혁자들이 많았으면 교황 인노센트 3세는 유럽 모든 군주들에게 군대 동원을 명령하여 20년간 개혁교회를 말살할려고 노력하였지만 주의 참 교회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더욱 왕성하였습니다. 그 당시 죽임을 당하거나 부상으로 사후에 죽거나, 과부와 고아로 살다가 사망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100만명 가량 된다고 추정합니다.

알비 십자군 이전과 그 이후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개혁교인들이 죽임을 당하였고, 동유럽의 바울인 역시 수 십만명이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이렇게 죽임 당한 사건을 일반 역사에서도 다루고 있고, 여전히 프랑스 곳곳에 이들의 죽음을 알리는 장소와 역사가 남아 있는데, 개신교회 학자들은 이들의 죽음을 개혁자의 죽음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직무 유기라고만 말하겠습니다.

(계속)

 

 

 

 

기고한 글은 본지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