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분석] 조국 법무장관 갈등의 본질과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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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분석] 조국 법무장관 갈등의 본질과 한국사회
  • 기독교평화연구소
  • 승인 2019.09.12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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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평화연구소 시대분석
조국 법무부장관 취임식 (사진 법무부 홈페이지)
조국 법무부장관 취임식 (사진 법무부 홈페이지)

 

조국 법무부장관 청문회 통해 기득권 구조의 민낯 드러내

개인 비리 부정 차원 아닌 정치 경제 사회 기득권 재생산 구조 노출

대중들 절망감, 허탈감 넘어 계급적 분노 느껴... 향후 역사 전환에 주목해야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청문회를 마치고 마침내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청문회 이전과 청문회 진행 과정은 한국 정치 청문회 역사상 가장 난타전과 여론전이 오가는 커다란 대립과 갈등이 넘실대는 시대의 현장이었다.

청문회 후보자라면 보통 재산 축적 과정, 부동산 거래 및 자녀 학교 입학 위한 위장 전입, 탈세, 남성 후보자의 경우 본인과 아들의 병역 관련 문제, 직무 능력과 경험, 도덕성 등 후보자 본인과 특정 주제의 가족 관련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조국 후보자 청문회는 이같은 범위를 벗어나 개인의 가족, 자녀, 대학입시, 장학금, 사모펀드 등이 문제가 되더니, 급기야 검찰까지 중간에 끼어들어 후보자 부인을 사문서 위조 혐의로 기소하면서 극단적 상황에까지 몰고 갔다. 결국 대통령이 심고 끝에 임명권을 행사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도대체 무엇이 상황을 이토록 만든 것인가? 무엇 때문에 상황이 끝난 것이 아닌 새로운 상황이 계속 만들어져 가는 것인가? 이번 사건이 이렇게 전개되는 구조는 과연 무엇인가? 그 배경을 분석해 본다.

먼저 조국 청문회에는 한국사회 지배세력의 권력 변동과정이 비껴있다.

기본 권력 갈등 구도인 여-야 관계가 아닌 사회, 경제 갈등관계인 기득권-비기득권과 사회 경제 권력의 재생산과 세습을 위한 계급 계층 재생산 구조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빈익빈 부익부 사회에서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자리잡은 교육 시스템이 드러난 것이다.

강남의 사립초등학교와 공립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시작되는 이 시스템은 중학교부터 사교육을 본격화 해 특목고와 외고에 자녀를 집중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위 SKY 대학을 거쳐 유학으로 마무리 지어 부와 지위를 계승하게 하는 기득권 순환 시스템인 것이다. 대한민국 1% 혹은 0.1%에 해당하는 기득권 층을 핵심으로 하고 그 주변을 ‘개천에서 용난’ 즉 중산층 이하 이자 별볼일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공부 잘해서 SKY대학에 간 이후 사법 행정 외무 고시에 합격하거나 사업 성공, 전문직에 이르고 심지어 자영업으로 성공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소위 출세한 이들이 차지하고, 그결과 얻은 인맥과 재물을 바탕으로 다시 자녀들을 기득권 재생산 구조에서 살아남게 하려는 노력으로 각종 인적네트워크와 정보, 기회를 활용하면서 이 시스템 구조는 더욱 탄탄해져 그 아래 사람들에게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계급 계층의 진입장벽)이 된 기득권 재생산 시스템 구조가 실체인 것이다.

여기에다 지난 시기에는 극우 보수 여당만이 정치 권력을 독점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중도 자유주의 세력과 일부 진보세력까지 정권 장악에 성공함에 따라 정치적 기득권을 빼앗기고 자칫 사회 경제적 기득권 마저 위협받는 구 기득권 세력이 신기득권 세력의 진출을 저지하고 정권을 되찾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움에 따라 그야말로 처절한 정치 경제 사회 기득권을 둘러싼 큰 싸움판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한국사회의 권력 변동 과정은 분단 구조를 기초로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북-미 간의 두차례 정상회담과 한차례의 판문점 만남으로 대결 분단에서 대화 평화구조로 전환해 가는 흐름이 형성됨에 따라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어쨌든 조국 법무부 장관의 청문회는 한 장관의 청문회가 아닌 정치 사회 경제 기득권 세력의 권력 교체라는 큰 맥락에서 볼 때 만이 그 치열한 이유가 이해되는 것이다.

둘째로 이런 권력 세력 관계의 변화를 바라보는 대다수 국민들의 절망감과 상실감이다.

민주주의 사회 속에서 주인으로 위치를 차지해야 할 대다수의 국민들은 기득권세력과 신흥 기득권 세력의 리그를 보면서 자신의 처지와 위치에 대해 절망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자신들이 설 자리는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들은 저들의 바탕이 되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절망감을 느낄 때 과연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민주주의는 작동하는지에 대한 회의감 마저 느끼고 있다. 그것이 여론에 반영된 국민의 분노인 것이다. 그러기에 국민의 분노는 계급적 성격을 갖고 있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사회의 기득권, 혹은 지도세력은 공히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들과 후대의 삶이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절망감은 공동체의 건강성으로 볼 때 위험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원조 고대 그리스가 활력을 잃고 쇠락해 마케도냐에 넘어간 것은 민주적 긴장성과 건강성을 잃고 기득권 정치의 금권 부패 정치를 통해 몰락한 역사적 교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시대의 건강성을 잃고 소피스트의 궤변과 선동정치로 혼란할 때, 솔론의 개혁정치마저 실패하고 헤매고 있을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적 세례를 받은 알렉산더가 지성과 정치의 강국 그리스를 마침내 정복하고 세계 정복의 길에 나선 것이다. 역사와 시대는 전혀 예상하거나 준비되지 않은 방향으로 나간 것이다.

한반도의 변화와 전환이 목전에 이른 지금, 한국사회가 건강성을 잃고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혼란으로 갈 길을 가지 않는다면 역사와 시대는 어느 쪽으로 방향을 틀 것인지 상상하기 어렵다.

한국교회는 한국 사회의 범주류에 속하는 기득권 세력의 범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를 지탱해 온 분단과 보수 수구 기득권 구조가 변화를 강요받고 있고 시대의 대세는 기울고 있다. 이런 때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와 갈등의 본질을 바로 보고 대국적 방략과 포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를 해야할 것이다.

한국기독교평화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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