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예장 합동 제104회 총회를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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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예장 합동 제104회 총회를 전망한다
  • 합동투데이
  • 승인 2019.09.16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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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총회 맞아 기획시리즈
시대 맞는 개혁 역량 마련해야

본지는 다음주로 다가온 예장 합동 제104회 총회를 맞아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1. 제104회 총회의 의미  2. 제104회 총회 이슈들  3. 제104회 총회 이후 방향으로 총회와 한국교회의 길을 분석하고 방향을 제시코자하는 기획이다. 시대와 교회, 당면 총회의 과제, 목회자와 실천의 길을 살피고 앞길을 찾는 총회원과 목회자, 교회지도자들에게 교회 언론의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 

 

예장 합동 총회 본부
예장 합동 총회 본부

 

Ⅰ. 제104회 총회 총회의 의미

Ⅱ. 제104회 총회 이슈들

Ⅲ. 제104회 총회 이후

 

Ⅰ. 제104회 총회의 의미

제104회 총회를 맞았다. 이제 1주일 후 역사적 104회 총회가 열린다.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조직 이후 일제 강점기 태평양전쟁 종전기의 공백과 6.25 한국전쟁 시기의 속회, 교단 분열 속회 등 수차례의 역사의 파도 속을 헤쳐 올해 104회 총회를 맞게 됐다.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 속을 꿰뚫고 한국교회의 중추 교단으로 자리 잡아 온 세월이었다.

 

동북아 한반도 전환의 시대 돌입

104회 총회는 시대의 전환이라는 큰 방향 변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총회라는 의미를 갖는다.

먼저 한반도·동북아의 전환이다. 한반도는 2018년 초부터 갈등 대결 구도에서 대화 평화 협상의 구도로 전환했다. 지난해 평창올림픽은 평화올림픽으로 남북 단일팀이 일부 종목에서 만들어지고, 이어 남북 정사회담이 시작돼 판문점 선언과 평양선언 등 한반도의 평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문을 열었다. 뿐만 아니라 북(조선)과 미국의 정상이 두차례의 정상회담과 판문점 깜짝 만남으로 2차 대전 이후 냉전 시대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적대적 관계를 전환하기 위한 협상의 문을 열었다. 한마디로 북(조선) - 미국, 남(대한민국) – 북(조선) 간 냉전, 대결, 전쟁, 갈등을 마치고 화해, 평화, 번영, 통일을 위한 길을 닦기 위해 모색하고 있는 시기인 것이다.

작은 배는 방향을 빠르고 쉽게 바꾸지만 큰 항공모함은 크게 원을 그리고 파도를 헤치며 방향을 전환하듯이, 전환 시대의 크고 작은 우여곡절은 있지만 전환 자체는 어떤 힘도 막을 수 없는 시대의 대세가 돼 있는 시기가 104회 총회가 열리는 시대이다.

우리 총회도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 시기의 고통과 고뇌가 있었고, 해방 직전에는 수차례 총회 조차 모이지 못하는 때가 있었다. 또한 전쟁과 내부 분열의 역사적 어둠의 시기가 있었고, 사회의 권위주의 독재시대처럼 교단의 교권 전횡의 시대도 있었다. 그리고 아직 교단은 개혁교단으로서 한국교회를 주도하고 이 사회와 민족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명실상부한 힘과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혁완수 위한 리더십 등... 주체 형성돼야

104회 총회는 시대의 전환과 함께 자기 자신을 재정비하고 시대의 예언자요, 복음의 선포자로서 사회와 민족을 이끌 역량을 준비하고 갖추어야할 과제가 놓여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개혁의 완수라는 과제가 놓여 있다. 이 시대의 개혁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부패와 불의를 들어내고 상식과 단결을 이루는 것이다.

지난 시기에 개혁의 열망을 통해 총회는 상당한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개혁은 공고하게 자리잡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개혁 주체 세력이 형성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난점이다. 여러 세력과 인물들이 입에는 개혁을 달고 살았으나 정작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굴복하고 교권의 달콤함에 빠져 개혁의 주체 세력, 개혁의 리더십으로 성장하는데는 실패했다. 교단 정치 내에 세력 간 이합집산은 있었으나, 개혁 주체의 성장과 개혁 의지의 실천은 실종했다.

도덕성 또한 한계에 부딪혔다. 합동교단은 통합측이 이미 통과시킨 세습 불법화 결의 조차 통과 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성직자의 성적 타락 문제에 대해서는 쉬쉬하고 있다. 사회에서 요구하고 이미 법제화된 목회자 납세 문제도 정부 비판의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가장 이슈가 되는 차별 금지법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반대 하고 국민운동 차원에서 주동적 역할을 하고 있다.

종교인들이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 비판적 입장인 것은 당연한 것이다. 성경도 이를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권력적, 여론적 방법으로 물리적 힘으로 제어하는 것은 진정한 복음적 방법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교회가 신뢰를 회복하고 교회의 가르침, 성경의 가르침이 사람들의 가슴을 사로잡을 때 그 결과로 동성애는 줄어들 것이고, 결국 사라질 것이다. 교회가 자기 도덕성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데 사회의 누가 교회의 소리를 듣겠으며, 그런 교회가 서명운동과 법적 권력으로 동성애 반대를 제도화하려한다면, 교회에 저항감만 더 심어 주지 않겠는가?

이제는 보수교회 보수교단도 막무가내로 주장하는 시대는 지났다. 정교한 논리와 철학적 깊이와 신학적 심오성 뿐만 아니라 실천으로 검증되는 도덕성을 가질 때, 진정한 복음화를 외칠 수 있고, 그럴 때만이 대중들이 교회로 발걸음을 다시 할 것이다. 극우 논리를 반복하는 보수교회는 이데올로기화된 교회일 뿐이고 대중이 외면하는 결과 밖에 나올 것이 없다. 진정한 진리의 보수, 즉 진정한 종교 개혁을 실천할 때 만이 생명력 있게 대중을 복음화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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