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로잔운동 점검(1): 로잔 운동의 시작과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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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로잔운동 점검(1): 로잔 운동의 시작과 의의
  • 문태순목사
  • 승인 2024.03.01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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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순목사(동서역사문화연구원 학술이사)

2024년 9월 22-28일에 제4차 로잔대회가 ‘서울-인천 2024’(Seoul-Inchon 2024)라는 명칭으로 개최될 예정이다. 그 주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세상의 교회가 협력하는 활동을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대회에는 수천 명의 선교관련 핵심인사들과 역시 수천 명의 일반 신자들이 참관자로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로잔 운동은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선교 활동이 비교적 세속적 특성을 수용하고 있는 데 비하여 순수 복음주의 전도를 핵심으로 하는 전 세계적인 선교활동이다. 이러한 성격의 대회가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기에 더욱이 3년여의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열리는 대회여서 국내적으로도 우리나라의 선교와 신학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일반 신자들의 신앙생활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로잔 운동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상당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선교학적 관점이나 신학적 관점에서 전문적으로 분석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반 신앙인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정도로도 충분하리라 본다.

로잔 운동의 이해를 위해서는 로잔 운동의 시작과 그 후의 흐름을 먼저 고찰하고 그 후에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려 진행된 로잔대회를 통해서 표명된 언약(Lausanne Covenant)이나 선언(Manyla Manifesto) 또는 협약(Cape Town Commitment) 등의 내용을 분석해 갈 것이다. 본고에서는 먼저 로잔 운동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고 그것을 세계교회사와 한국교회사에서 어떻게 분석될 필요가 있을 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로잔 운동의 단초는 전도자 빌리 그래햄(Billy Graham, 1918~2018) 목사가 1950년에 설립한 빌리 그래함 복음주의 협회(Billy Graham Evangelistic Association)가 1966년에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 전도대회를 후원한 사태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베를린 세계 전도대회는 1910년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개최되었던 ‘에든버러 선교 대회’(the Edinburgh Missionary Conference)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든버러 선교대회의 의장이었던 모트(John R. Mott, 1865~1955)는 그 대회를 선교 역사에서나 기독교 연대기에서나 전 세계 기독교 확장과 관련한 개최된 모임들 중에 가장 주목할 만한 모임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그 후 50년이 지난 1960년 곧 에든버러 대회의 희년을 맞이하여 행해진 대회에서 마틴(Huge Martin)은 에든버러 대회를 오래된 기독교 교회사 가운데서도 가장 창조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하였다. 그에 따르면 에든버러 선교대회는 현대 선교신학의 시작이자 현대적인 전 세계교회 운동의 발판이었다.

에든버러 선교대회는 그것을 계기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 세계 모든 문화 속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는 운동이었다. 즉, 이 대회를 통해서 세계 모든 곳의 교회와 사회 속에서 복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인데, 이 대회에 참석했던 대의원들은 그때까지 있지 않았던 ‘세계 교회’(a world church)라는 비전을 품을 수 있었다. 윌리엄 템플(William Temple)은 이에 대해 자기 시대의 위대한 새로운 사실로써의 ‘참된 세계의 그리스도 교회’(a truly worldwide Christian Church)라고 서술하였다.

그 후 1966년 베를린 전도대회가 열렸는데, 여기에는 100여 개의 나라들로부터 1,200 여명의 대표들이 참석하였다. 이 대회 이후로는 싱가포르(1968), 미니애폴리스와 보고타(1969), 호주(1971) 등에서 연이어 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그 결과 빌리 그래함 목사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격변의 세계에서 기독교 선교의 틀을 재조정하기 위해 더 크고 더 다양한 대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 인식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들을 모든 대륙에서 모인 기독교 지도자들과 공유해 나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1974년 7월에 150여 개국으로부터 온 약 2,700명의 참가자와 손님들이 스위스 로잔(lausanne)에 모여 10일간 토론, 친교, 예배 및 기도를 가지는 결실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것이 제1차 로잔대회다.

이 대회는 미국의 타임지(TIME Magazine)에서 다양한 국적, 민족, 연령, 직업 및 교회 소속을 망라하는 모임이었기에 '가장 강력한 포럼, 아마도 지금까지 개최된 기독교인의 광범위한 모임'이라고 기사화될 정도였다. 이 대회의 주요 성과 중에 하나는 로잔언약(the Lausanne Covenant)의 개발이었다. 총 15개 항으로 구성되었는데 스토트(John Stott) 목사가 초안 작성 위원회의 의장이 되어 그 성안을 주도하였다. 그것은 공개적으로 선포된 하나님과의 언약이자. 서로간의 언약이었다. 이 언약은 그 후 복음주의 신학과 실천을 정의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많은 새로운 파트너십과 동맹을 위한 발판이 되었다.

또한 이 대회에는 에코바(Samuel Escobar), 쉐퍼 박사(Francis Schaeffer), 헨리(Carl Henry) 및 스토트 목사(John Stott) 등을 포함하여 당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독교 사상가들이 참여하였다. 특히 랠프 윈터(Ralph Winter)는 전체 연설을 통해 '미전도 종족'(unreached people groups)이라는 용어를 소개하였는데 이 용어는 선교학의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로잔대회의 영향으로 1980년에는 태국의 파타아(Pattaya)에서 “세계복음화 협의회”(the Consultation on World Evangelization)가 개최되었고, 1987년에는 싱가포르에서 “젊은 지도자 협의회”(the Conference of Young Leaders)가 개최되었으며, 2004년에는 포룸(Forum)에서 “세계복음화 실무협의회”(the Forum for World Evangelization)가 열렸고. 2006년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젊은 지도자 모임”(the Younger Leaders’ Gathering (Malaysia 2006)이 개최되었다. 이외에도 로잔운동은 지역 연대와 이슈별 협의회 구성에도 영감을 주어 아시아 로잔 전도위원회(the Asia Lausanne Committee on Evangelism (ALCOE), 세계 복음화 중국 협력 센터Chinese Co-ordination Centre for World Evangelization (CCCOWE) 등이 설립될 수 있었다.

제2차 로잔대회는 1989년에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는 동유럽과 소련을 포함한 170개국에서 3,000명이 참석하였다. 이 대회에서 ‘마닐라 선언문’(The Manila Manifesto)이 채택되었다. 그 내용은 세계의 모든 참여단체들이 서로 협력하여 세계 복음화운동을 행한다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로잔의 여러 소위 모임들에서 다양한 주제별 발표와 토의가 이루어졌는데 이 논문들을 모아서 ‘로잔 수시 논문’(Lausanne Occasional Papers) 기록물이 제작되었다. 초기 LOP의 대부분은 힌두교도, 불교도, 난민 및 명목상의 기독교인과 같은 특정 그룹에 대해 어떻게 전략적으로 기독교를 증언해야 하는 지를 설명하는 것들이었다.

제3차 로잔대회는 2010년 10월 16-25일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 열렸다. 2010년 케이프타운의 목표는 로잔언약에 표현된 로잔의 정신을 다시 자극하고 일치를 촉진하려는 것이었다. 그 핵심은 겸손한 봉사, 적극적인 세계 복음화에 대한 부르심이었다. 198개국 4000여명의 지도자들이 참가자 및 참관인으로 참석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은 케이프타운 세계연결의 일부로 신학교와 대학교, 교회와 선교 기관들, 그리고 지구촌 방송에 참여하였다.

1974년 제1차 로잔대회 이후로 로잔운동은 15개 항으로 이루어진 로잔언약의 사상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복음주의에 토대한 세계 전도운동으로 이어져왔다. 이 대회가 올해에는 우리나라에서 열린다. 마땅히 우리나라의 선교학자들이나 신학자들, 선교사들, 온 교회들, 그리고 일반 성도들에 이르기까지 이 대회에 참여하여 세계적 신앙의 흐름과 세계 선교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 중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신학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세계의 신학 수준에 비해 좀 부족하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온 나라가 폭발적인 성령의 역사로 인해 열정적 신앙을 지닌 신자들의 증가와 교회의 증가는 세계 교회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신앙체험이 있다. 신기하게도 우리 민족은 선교사들이 와서 본격적으로 선교활동을 하기 전에 먼저 성경을 전달받았고, 선교사 없이 먼저 교회(소래교회, 황해도)를 세웠다. 일제의 압제 속에서 복음이 확장되고 교인와 교회가 증가하였다. 신앙의 폭발의 계기는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이었다. 그 후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신앙을 지키며 순교한 주기철 목사,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옥고를 치루었던 최덕지 목사, 한상동 목사 등이 배출되었다. 1950년의 6.25 민족동란 속에서도 손양원 목사와 같은 순교자, 복음을 사수하는 일반 신자들의 순교가 이어졌다. 1960년대를 전후의 빈곤국에서 벗어나서 1990년대 이후로 경제성장을 이루는 동안 그 고난 속에서 신앙을 지키고 키워갔고, 교회를 세워나갔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가 경제가 부흥하여 선진국으로 가면서 우리 민족의 순수한 신앙이 약화되었고, 폭발적이었던 성령의 역사가 식어가고 있다.

지금 우리 민족에게는, 우리나라의 신자들에게는 신앙의 폭발적 변화의 계기가 필요하다. 신학적으로 선교적으로 변화가 필요하며, 교회 단위로나, 개인 신앙인으로나 변화가 필요하다. 마침 올해에 우리나라에서 로잔대회가 개최된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가 더욱 가열차게 세계 복음화 운동에 뛰어들어 이를 주도하는 한편, 로잔언약이나 마닐라 선언 또는 케이프타운 협약 등을 우리의 신앙관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며 우리의 신앙체험을 이들과 연계하여 세계 복음화 운동에 참여할 때라고 본다. 대한민국의 모든 신앙인이 결단하고 모든 교회가 합심하여 세계의 신앙인들과 영적으로 교류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세상 끝까지 전파하는 대열에 나서야 할 때다.

 

문태순 목사(동서역사문화연구원 학술이사)

 

문노사목사(논설위원)
문태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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