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코로나 펜데믹 이후 한국교회의 나아갈 길에 대하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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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코로나 펜데믹 이후 한국교회의 나아갈 길에 대하여 1
  • 김성윤 기자
  • 승인 2022.05.02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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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로나 펜데믹에 대한 평가

2. 코로나 펜데믹에 대하는 한국교회의 대응 실태와 평가

3. 코로나 펜데믹의 의미 평가

4. 코로나 펜데믹 이후의 세계 변화

5. 코로나 펜데믹 이후 한국교회의 나아갈 길

 

1. 코로나 펜데믹에 대한 평가

코로나19 사태(이후 코로나 펜데믹)가 마무리 돼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와 정부는 실외 마스크를 허용하면서, 코로나 펜데믹의 상징이던 마스크를 벗으면서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물론 아직 실내 마스크는 여전하며, 실외에서도 50인 이상의 모임과 스포츠, 공연등에서는 마스크를 사용하지만, 큰 흐름은 사실상 코로나 펜데믹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2019년 1월 중국의 우한에서 발생해 3년째 전세계를 멈추게한 코로나 펜데믹은 전세계와 한국사회, 그리고 한국교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며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게 됐다.

코로나 펜데믹은 최초 바이러스로부터 요즘의 우세종인 오미크론 변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이 과정을 거쳐 독감보다 강하지만, 면역과 치료로 인간과 공존가능한 수준으로 내려왔다. 즉 감기의 일종으로 변화된 것이다. 향후 인류는 코로나19라는 코로나 감기의 일종으로 함께 생존해 나가는 시대로 진입했다.

전세계는 코로나 펜데믹에 대한 평가와 대응에서 다양한 입장차이와 실천의 차이를 보여왔다. 미국과 유럽의 일부 국가는 백신에 의존한 방역으로 상당한 감염자와 사망자를 내면서 오늘날 사실상 코로나가 종료된 것으로 미국은 평가하고, 영국 프랑스등 주요국 들도 마찬가지 대응을 해왔다. 반면 북유럽의 스웨덴 등은 초기부터 방역을 반대하고 전체 국민이 일관되게 바이러스에 노출된 가운데 생활을 했으며, 결과적으로 가장 먼저 코로나를 극복한 나라로 평가받았다.

아시아권에서는 국가의 상황과 수준에 따라 일본, 동남아, 중국 등이 각기 다른 방역 정책과 방법으로 다양한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 중국은 초기의 혼란기가 지난 후에는 강력한 방역정책과 자체 개발한 백신으로 인구대비 믿을 수 없는 숫자의 감염만을 내고 있으며, 지금도 그 기조를 계속하고 있다.

일본은 우왕좌왕하면서 올림픽 개최등에 혼란을 가지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안정을 유지하고 있으며, 동남아는 아직도 혼란 상황 가운데 있다.

한국의 경우는 초기의 강력한 방역으로 비교적 안정되게 관리되고 있었으나, 오미크론 변이 단계에서 한때 수십만의 하루 감염자가 나왔으나, 이제는 안정단계를 맞으며 실외마스크를 해제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전세계적으로 오미크론 단계에 이르러 코로나 펜데믹은 사실상 종료 단계에 이르고 있으며, 새로운 생활 구조로 전환하는 시점에 이르고 있다.

 

2. 코로나 펜데믹에 대하는 한국교회의 대응 실태와 평가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수세적으로 코로나 펜데믹에 대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 초기의 신천지 조직을 통해 전국화된 코로나 펜데믹 확산 책임론은 유사한 집회 구조를 갖고 있는 한국교회를 긴장 시켰고, 몇차례의 정치집회 책임론을 넘어 한국교회의 후진적 대응으로 인한 비판의 대상이 되게 했다.

 

교회 16%가 예배 중단

한국교회의 후진적 대응은 구조적 요인으로 인한 것이었다. 전체 교회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교회와 개교회주의로 인한 목회자의 개인적 판단과 대응에 의존한 교회의 대응 실태로 인해 초기에는 한국교회의 미개성(?), 비과학성이 도마에 올랐다.

어느 교회에서의 소금물 소독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비과학적이며 미개한 종교집단으로 이미지가 덧칠되며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에서 급속히 유리되었다.

코로나 펜데믹에 대한 공교회 지도부의 대응 또한 별 뾰족한 것이 없었다. 교단과 연합기관의 지도부는 대부분 대형교회와 교권 집단의 영역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작은 교회에 대한 관리 감독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으며, 별다른 대응 방안도, 극복 방향도 없었다. 개교회 별로 소독을 철저히 하는 것과 방역 수칙을 지켜 예배를 진행하거나 비대면 방송 예배를 진행하는 것 외에는 별 방법이 없었다. 교단 목회자들의 토론도, 신학자들의 연구도 없었으며 개별 목회자들의 목소리에 우왕좌왕 했다.

총회 또한 첫 해는 수십곳에서 흩어져 회의를 하며, 안건은 졸속 처리 될 수 밖에 없었고 그런 행태는 다음 해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코로나 펜데믹 기간 동안 중소 교회는 자연히 사라진 곳이 많았고, 예배를 드리지 않는 곳이 정부 통계로도 16%에 이르렀다고 한다.

반면 보수적인 한국교회의 정서와 의식을 대변하는 단체와 인사들은 정부의 방역 조치에 따른 회집 금지를 예배 금지로 인정하고 정부의 교회 탄압, 종교 탄압 프레임을 창출해 냈다.

이 지점은 논쟁이 되는 부분이다. 중소 자영업자들이 영업 제한을 받고, 스포츠 경기가 무관중으로 진행되고, 공연이 중단된 상황에서 예배를 비대면으로 전환하는 것이 교회 탄압, 종교탄압에 속하는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지 않다. 코로나 펜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전체 한국사회가 대응해야 하지, 교회라고 치외법권 지역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식에 대한 판단에서 한국교회와 한국사회는 입장이 유리되기 시작했다.

나아가 교회 탄압 프레임은 대통령 선거를 맞으면서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됐고, 결국 한국교회 대부분이 지지하던 후보가 당선됐다. 예배 중지 – 교회탄압 – 대통령 선거로 이어지는 이념 정치 구도가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30년 전에는 장로 대통령으로 시작된 한국교회의 정치 프레임이 코로나 펜데믹 시대에는 예배 중지 – 교회탄압 프레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선인은 한국교회 부활절연합예배에 와서 인사까지 했다.

결국 한국교회는 원하던 원치않던 이 사회의 정치-이념 프레임에 갇혀서 존재하고 있는 현실을 명백히 드러낸 것이다. 코로나 펜데믹 상황이 그 현실을 극적으로 현상화 했을 뿐이다.

 

한국교회, 자기 성찰과 회개가 코로나 이후의 첫걸음 돼야... "물고기는 물과 다투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이제 코로나 펜데믹도 마무리되고, 선거도 끝났다. 이 시기에 냉정히 한국교회는 스스로를 성찰하고 회개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물고기는 물과 다투지 말아야 한다’는 금언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와 맞서면 안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분리 분열 현상에서 어느 한편에 서서 분리 분열 구조에 서거나 일조한다면, 한국교회는 설 곳이 없다.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다툼이 있는 곳에 평화를...' 주는 유일한 사회 집단이 교회이다. 그 정체성을 잃으면 한국교회는 이 사회에서 생명을 다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코로나 펜데믹을 지나며 많은 자기 성찰과 회개의 요소를 이 사회와 역사 앞에 드러내 놓고 말았다. 그 평가와 회개가 한국교회의 코로나 이후 시대를 잘 수습할 수 있을 것인가를 가르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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