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기독교강요 둘러보기(22) - 믿음과 중생과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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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기독교강요 둘러보기(22) - 믿음과 중생과 회개
  • 문노사 목사
  • 승인 2022.12.0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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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노사목사(전 백석대 교수, 교육학박사 ㆍ 본지 논설위원)

믿음에 대한 정의 곧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이시자 우리(나)의 아버지 하나님으로 알고, 그리스도를 우리(나)의 구세주 하나님으로 아는 것이라 할 때 그 안에는 이미 중생이 함축되어 있다. 믿음의 실체(실질적 내용물)는 “값없는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에 따른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있다(3권 4장 1절 주 참고). 다시 말하면 성도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선한 것들을 소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핵심 요체가 ‘회개’와 ‘죄사함’이다.

회개는 사람의 삶이 새로워지는 것을 의미하고, 죄사함은 값없이 주시는 화목으로 이해될 수 있다. 사람이 회개함으로써 과거의 삶을 단절하고 새로운 삶에 이르게 되고, 이로 인해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화목의 자리로 들어서는 것이다. 이 후에야 사람(성도)은 거룩한 삶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회개의 원인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 했을 때에 논리적으로는 회개가 먼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회개의 본질의 측면에서 보면 천국이 먼저 가까이 왔기에,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이 있기에 회개가 뒤따르고 있을 뿐이다. (세상의 모든 논리 체계는 언제나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선후가 있다. 예컨대 믿음과 중생과 회개라고 말하면 이 순서대로 나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사태는 중생과 회개와 소명 등등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잘못될 게 없다. 세상에서는 인관관계를 따른 논리전개를 귀납법이라 한다. 사유적 대전제를 근거로 논리를 전개하는 것을 연역법이라 한다. 믿음과 중생과 회개는 그 서술이 귀납적으로 전개되든 연역법적으로 전개되든 실제에 있어서는 사람의 논리체계를 벗어나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보면 회개는 하나님과 하늘나라, 하나님의 구원 등을 먼저 아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더욱이 성도가 회개에 열의를 다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나님께서 성도가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에도 감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성령이 이 과정 전체를 주관하실 때 올바른 회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3권 3장 2절 참조).

그렇다면 회개의 가장 우선적인 조건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회심’이 된다. 회개는 히브리어로는 ‘회심’(마음을 돌이킴) 또는 ‘다시 돌아옴’을 뜻한다. 우리의 삶의 방향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다. 헬라어로는 ‘마음과 계획의 변화’를 뜻한다(3권 3장 5절 참조). 이것들을 근거로 하여 정의하면 회개는 하나님에 대한 신실하고 진지한 경외로부터 나오는 그를 향한 우리의 삶의 참된 돌이킴이 된다. 그 구체적 내용은 우리의 육체와 옛사람을 죽임과 성령의 살림으로 이루어진다. 돌이킴은 죄로 죽어 있던 육체를 죽이고 그 죽음으로부터 돌아선다는 것이고, 마음과 계획의 변화로서의 회개는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엡 4:23-4)는 것이다.

회개의 두 번째 조건은 하나님에 대한 진지한 경외함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기도 하다. 사람이 회개하기 전에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고, 그리하여 사람의 모든 말과 행위들을 따지시기 위해 심판좌에 앉으실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그의 마음을 휘감을 때 사람은 불안함에 빠져들어 평화를 잊어버린다. 그리하여 긴급하고 간절하게 자신의 삶을 달리 바꾸게 된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렘 4:4) 회개가 하나님이 뜻에 따른 근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진정한 회개는 사람(성도)이 하나님의 형벌을 무서워하고, 하나님이 죄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미워하고 가증스럽게 여길 때 일어나는 것이다(3권 3장 7절).

회개의 세 번째 조건은 육체를 죽이고 영을 살리는 것이다. 육체를 죽이는 것은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시 34:14)는 것이며, (우리가)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는(사 1:16~17) 것이다. 육체의 모든 욕망과 본성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롬 8:7). 따라서 사람의 본성의 새로워짐이 필수다. 이 새로워짐, 달리 말하면 영의 살림은 사람이 살아난 후에 맺혀지는 열매들, 곧 공의와 판단과 자비 등으로 증명된다. 우리의 온 마음이 먼저 공의와 판단과 자비로 옷 입혀지지 않으면 공의와 (올바른) 판단과 자비의 바람직한 실천은 불가능하다. 오직 성령께서 우리 안에 이러한 정서들을 서서히 불러일으키면서 우리의 마음과 열정을 깨울 때에만 이 정서들이 우리 안에서 새로운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3권 3장 8절).

한편 회개의 궁극적 성취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있다. 즉 회개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을 그 결과물로 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5~6).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할 때 그로 인하여 우리는 일으킴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의에 합당한 존재가 된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 우리의 지식을 새롭게 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3권 3장 9절). 따라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모양에 가까이 나아가게 되면 그만큼 더 하나님의 형상이 그 안에서 빛나게 될 것이다.

이상에서 성도가 (믿음과 중생과) 회개를 통하여 죄의 예속으로부터 풀려난다는 것이 드러났다. 하지만 성도가 비록 거룩한 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이 정욕의 질병에 여전히 매여 있다. 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리는 욕망을 생기게 하는 사악함인데 그것이 우리 안에 여전히 거주하기 때문이다. 죄의 자취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탐욕들이 그 증거다. 이것들은 결코 사람이 태어날 때 받는 본성이라거나 자극들이 아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율법을 범한 것이 죄라는 성경 말씀을 부정한 것과 다르지 않다. 타락 후의 인간의 욕정들은 창조 때의 천품의 욕구가 아니라 사악하고 부패하게 되어 영구적인 무질서로 남아 있는 것들에 불과하다.

다시 고백하지만 성도가 육신을 지니고 있는 한 율법을 범하는 욕정의 죄를 온전히 극복하고 완전해지기는 어렵다. 하지만 죄가 일방적으로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는 할 수 있다. 성도는 죄를 피할 수 있고, 죄의 기회를 얼마든지 포착하고 모면할 수 있다. 성도는 온갖 탐욕의 불법들에 맞서 죄를 인지하고 피해서 그것들이 자신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결론을 맺자. 믿음이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이시자 우리(자신)의 하나님을 알고, 동시에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우리(자신)의 구세주로 아는 것이기에 그 자체 안에 이미 중생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회개는 이러한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발생한다. 그것은 사람의 욕정의 생활로부터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마음으로 느낄 때 진정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심의 마음이다. 회개는 죽음과 살림이라는 두 부분으로 진행된다. 죽음은 옛사람을 죽이는 것이고, 살림은 하나님의 영으로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이다. 그 실체(상)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모두 참여하여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회개한 성도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훈련과 연단을 받아 죄를 알고 그것을 피하거나 맞서 싸워야 한다. 만일에 성도가 죄에 패퇴 당했다면 다시금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기억하면서 지난날의 자신의 죄악의 삶으로부터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회심의 마음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더 나아가 다시금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하고자 자신을 부인하며 죽이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여 자신의 영을 새롭게 해야 한다. 성도는 죽는 날까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잃지 말고 끝없이 회개하는 삶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이 외에 재세례파를 비롯한 이단들의 어떠한 헛소리에도 유혹되거나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 회개는 성도가 옛사람의 생활방식과 결별하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 진심으로 하나님께로 향하여 나아가는 새로운 삶의 결단이자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결실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노사목사(논설위원)
문노사목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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