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기독교강요 둘러보기(37) - 참 교회와 거짓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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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기독교강요 둘러보기(37) - 참 교회와 거짓 교회
  • 문노사 목사
  • 승인 2023.06.2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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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은 만약에 구약의 선지자 시대에 유대인의 모임들이 각각 교회였다면 그것들은 진리의 기둥이 아니라 거짓을 받치는 지주였고, 성전이 아니라 우상들을 담는 용기였다고 단정하였다(4권 2장 10절). 엘리야와 미가, 이사야와 예레미야 등과 같은 선지자들은 당당히 이 모임을 떠나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칼뱅 자신은 로마교회가 우상숭배와 미신과 불경건한 교회라고 확신하였다. 그가 보기에 로마교회 같은 곳에 참여하면서 교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약속을 헛되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었다.

교회의 근본이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가르침에 있고 그 가르침이 신자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구원을 오직 그리스도께만 맡기도록 명령하는데 있기에 이 가르침이 제거된다면 교회는 건물로만 남을 뿐이다. 껍데기로 서 있는 교회가 오래 지속된다 한들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반면에 말씀과 성례의 사역이 순전하고 깨끗하게 남아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교회’라는 이름을 보유한다. 어떤 도덕적 악이나 병폐라도 교회를 막을 수 없다(4권 2장 1절).

교황(제)들은 고대의 연대기들을 살펴볼 때 자신들의 참 교회가 옛날 이탈리아와 프랑스와 스페인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 교회들은 (로마교회의) 건전한 교리로 교회들의 기초를 놓고 일으켜 세운 거룩한 사람들(로마가톨릭의 성자에 해당)과 그들의 피로 건물이 세워진 것들이다. 이 교회를 로마주교들이 계승해 가면서 유지될 때 참 교회라 칭해졌다(4권 2장 2절 적용). 칼뱅은 이러한 주장을 빈정대면서 헬라교회에서도 주교의 전승이 있었고, 아프리카나 애굽, 또는 아시아 전역에 있던 교회들에 대해서도 참 교회라 할 만한데 교황들이 그렇게 인정하지 않았다고 고발한다.

참 교회의 기둥과 터는 말씀의 계승이지 인물의 계승이 아니다(4권 2장 3절). 그러므로 말씀을 계승하지 않는 교회는 이스라엘 백성(제사장 포함)이 하나님께 잘못 된 제사를 드려 버림을 받았듯이 배척되어야 한다. 로마 교회는 주교의 계승을 전통으로 하면서 그리스도의 신부의 자리에 창녀를 앉힌 꼴이었다(4권 2장 3절).

이처럼 적그리스도의 독재 아래에 있는 교회는 신정 모독적인 불경건과 무자비한 지배, 악하고 치명적인 교리들로 교회들을 부패시킨다. 이 교회들 안에서 그리스도는 절반은 매장되신 채 감춰져 있었다. 복음은 짓눌려졌고, 경건은 파괴되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폐지되다시피 했다. 그 교회들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너무나 혼란에 빠져서 그것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의 모습은 사라지고 바벨론의 얼굴만을 드러냈었다(4권 2장 12절).

실제로 교황제가 교회의 머리가 되어 있는 로마가톨릭교회는 모든 이들에게 그들의 모든 기도와 성례와 의식에 참여하도록 강제하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로마교회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교회에 돌리시는 모든 영예와 권세와 재판권들을 똑같이 그대로 로마교회에 넘겨줄 것을 요구하였다(4권 2장 9절).

하지만 이에 대한 칼뱅의 비판은 통렬하다. 그 첫째와 관련해서는 구약의 예루살렘 교회가 부패했었지만 그때에도 선지자들은 어떤 미신적인 예배에도 참여하도록 강요받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짊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로마교회는 잔악한 예배에의 참여를 강요한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예는 여로보암 왕 당시의 예루살렘 교회의 실상이다. 비록 여로보암 왕 자신이 포고한 규정대로 할례가 남아 있었고, 희생제사들이 드려졌으며, 율법이 준수되었고, 조상들이 하나님께 하던 기도가 드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거짓된 것들과 금지된 것들이 드려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 그러므로 교회에 속한 경전한 사람들이라면 교회가 불경하고 부패한 예식들로 인해 타락한 경우에는 그런 교회를 무작정 계속해서 따라할 수 없다는 것이 칼뱅의 주장이었다.

두 번째와 관련해서는 이사야의 고발을 통한 비판이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사 1:12-15). 만일에 유대인들의 이런 모임 하나하나가 교회였다고 한다면 엘리야나 미가, 또는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호세아 같은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따돌림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4권 2장 10절). 참으로 그 선지자들이 부패하고 타락한 예루살렘 교회와 제사장들과 연합하여 예배하였더라면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일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우상숭배와 미신과 불경건한 교리로 오염된 로마교회를 인정하고 교류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가 교회에 부여하신 권세와 영예와 재판권이 무효화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말씀과 불가분의 고리로 연결된 교회의 열쇠로서의 권위가 로마교회에서는 파괴되었다. 그리스도의 약속을 헛되이 사라지게 하는 그런 교회라면 그리스도의 종들은 마땅히 그런 교회의 교제로부터 떠나야 한다.

이러한 주장들 때문에 로마교회는 칼뱅을 이단자이자 분파주의자라고 비난하였다. 그가 이단자인 이유는 다른 교리를 가르친 것 때문이었고, 분파주의자인 이유는 로마교회의 연합을 깨트린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고발에 대한 칼뱅의 교리적 통찰 역시 너무도 명쾌하였다. 먼저 그는 교회의 연합이 건전한 교리와 형제적 사랑이라는 두 개의 사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건전한 교리가 파괴되는 것은 이단자들의 거짓 교리들로 인해 믿음의 순수성이 오염될 경우다. 교회의 유대가 무너지는 것은 비슷해 보이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척 하면서도 연합체의 고리를 파괴할 때이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유대는 다른 데 있지 않고 그 공동체의 연합된 믿음에 여부에 달려 있다. 진정한 하늘나라의 연합은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우리의 의지 또한 서로 간에 선한 의지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는 것이다(4권 2장 5절). 연합의 원리는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요”(엡 4:5)다. 그 연합은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빌 2:2)는 것인데, 곧 그리스도의 마음(빌 2:5)과 하나 되는 것이다. 요약하면 칼뱅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곳에는 신자들의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고 단지 믿지 않는 자들의 분파만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드러냈을 뿐이지 결코 이단자나 분파주의자가 아니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칼뱅의 로마교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하나님께서 그런 교회의 얼굴에서 아무리 비참하게 흩어지고 쪼개진 자기 백성이라도 남은 자들을 그 안에서 보존하시는 한, 그리고 마귀의 계교나 인간의 사악함 모두로도 파괴할 수 없는 참 교회의 징표들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한, 교회라 불렀던(4권 2장 12절) 사실에서 드러나듯이, 오직 참 교회를 세우려는 그의 열정적 믿음 때문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는 이단자이거나 분파주의자가 아니라 자신이 섬겨야 하는 교회가 참 교회이기를 열망한 것이었다. 참으로 그는 로마교회의 부패와 잔악함에 맞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려 했던 것이다.

키프리아누스(Thaschus Caecilius Cyprianus; AD 210 – AD 258)도 교회적 조화의 모든 원천을 그리스도의 유일한 감독직에서 도출하고 있다. “교회는 하나다. 그것은 다산(多産)의 증가를 이루어 널리 퍼져 간다. 태양의 많은 광선이 있기는 하지만 빛이 하나인 것처럼, 나무에 많은 가지가 있지만 견고한 뿌리에 근간을 둔 줄기는 하나인 것처럼, 하나의 샘에서 많은 시내가 흘러나오는 것처럼 … 태양의 몸체에서 광선을 떼어 낸다고 한들, 그 하나됨에는 어떤 분할도 일어나지 않는다. … 교회는 주님의 빛에 흠뻑 잠겨서 모든 곳으로 퍼져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곳에 퍼진 것은 하나의 빛이다”(4권 2장 6절). 참으로 교회의 모든 원천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이외에 그 무엇으로도 교회의 머리를 만드는 곳에는 교회는 없다.

성경이 말하는 참 교회는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요 18:37)는 곳에 존재한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요 10:14) 그곳에 참 교회가 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요 10:27)는 곳이 참 교회다.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요 10:4~5)는 곳에 있다. 진실로 이런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는 자, 그의 양, 그를 따르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인침을 받은 자들의 공동체다.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말씀으로 이런 사람들을 다스리는 그곳이 교회이자 그리스도의 나라다(4권 2장 4절).

칼뱅은 자신의 시대의 참 교회를 이렇게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 위에 터 잡고 서 있으면서 그리스도가 친히 모퉁잇돌(엡 2:20)이 되시는 교회로 이해하였다. 그곳에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난 자들, 조금 말을 달리하면 교리의 순수하고 합법적인 씨에서 난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롬 9:6~9)로 남아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다.

오늘날 전 세계의 모든 교회와 신자들은 분연히 불신앙을 떨치고 일어나 그리스도가 자기의 말씀으로 다스리는 교회이자 공동체이자 나라를 사모하며 세워가야 한다. 특히 대한의 모든 교회와 모든 신자들은 참 교회로 일어나 굳게 서서 진리의 말씀에 터한 건전한 교리와 형제적 사랑의 교제를 전하고 실천해야 한다.

칼뱅은 구약의 선지자 시대에 유대인의 모임들이 만약에 각각 교회였다면 그것들은 진리의 기둥이 아니라 거짓을 받치는 지주였고, 성전이 아니라 우상들을 담는 용기였다고 단정하였다(4권 2장 10절). 실제로 엘리야와 미가,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들은 이 모임을 떠났다고 보았다. 칼뱅은 자신의 시대에 로마교회가 우상숭배와 미신과 불경건한 교회라고 확신하였다. 그런 교회에 참여하여 교권을 인정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약속을 헛되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교회의 근본이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가르침에 있고 그 가르침이 신자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구원을 오직 그리스도께만 맡기도록 명령하는데 있기에 이 가르침이 제거된다면 교회는 건물로만 존재하는 것이어서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반면에 말씀과 성례의 사역이 순전하고 깨끗하게 남아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교회’라는 이름을 보유하게 되며 어떤 도덕적 악이나 병폐도 이를 막지 못한다(4권 2장 1절).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교황(제)들이 고대의 연대기들을 살펴볼 때 옛날 이탈리아와 프랑스와 스페인에 참 교회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참 교회란 건전한 교리로 교회들의 기초를 놓고 일으켜 세운 거룩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피로 교리와 건물이 세워진 경우다. 그 핵심은 로마교회들이 이런 주교들의 계승에 의해 유지된다는 점에서 참 교회라고 한 것이었다(4권 2장 2절). 재미있는 것은 칼뱅이 보기에 헬라교회도 주교의 전승이 있었고, 아프리카나 애굽, 또는 아시아 전체 교회에 대해서는 교황들이 참 교회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적그리스도의 독재 아래에 있는 교회(그 대표가 로마교회)는 신정 모독적인 불경건과 무자비한 지배, 악하고 치명적인 교리들로 교회들을 부패시켰다는 것이 칼뱅의 입장이다. 이 교회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는 절반은 매장되신 채 감춰져 계신다. 이 교회들 안에서 복음은 짓눌려졌고, 경건이 파괴되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거의 폐지되었다. 교회들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너무나 혼란에 빠져서 그것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의 모습은 사라지고 바벨론의 얼굴만을 드러낸다(4권 2장 12절).

사실 칼뱅은 그런 교회의 얼굴에서 아무리 비참하게 흩어지고 쪼개진 자기 백성이라도 남은 자들을 그것들 가운데 보존하시는 한, 교회의 징표들, 특히 마귀의 계교나 인간의 사악함 모두로도 파괴할 수 없는 징표들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한, 교회라고 불렀다. 아마도 이런 교회에는 그 자신의 교회가 당당하게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그는 로마교회의 부패와 잔악함에 맞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려 한 것으로 보인다.

참 교회의 기둥과 터는 말씀의 계승이지 인물의 계승이 아니다(4권 2장 3절). 그러므로 말씀을 계승하지 않는 교회는 이스라엘 백성(제사장 포함)이 하나님께 잘못 된 제사를 드려 버림을 받았듯이 배척되어야 한다. 하지만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난 자들, 조금 말을 달리하면 교리의 순수하고 합법적인 씨에서 난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롬 9:6~9)로 남아 하나님을 예배한다. 로마 교회는 주교의 계승을 전통으로 하면서 그리스도의 신부의 자리에 창녀를 앉힌 꼴이었다.

칼뱅이 말하는 교회는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요 18:37)는 곳에 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요 10:14) 그곳에 교회가 있다. 교회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요 10:27)는 곳에 있다.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요 10:4~5).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는 자, 그의 양, 그를 따르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인침을 받은 자들이다.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말씀으로 이런 사람들을 다스리는 곳이 교회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나라이다(4권 2장 4절).

로마교회가 칼뱅을 이단자와 분파주의자라고 비난 한 것은 그가 로마교회와 다른 기도와 세례와 성만찬과 기타 여러 성례들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칼뱅을 이단자라고 한 것은 그가 로마가톨릭과 다른 교리를 가르치기 때문이었고, 분파주의자라 한 것은 로마교회의 연합을 깨트린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러한 고발에 대한 칼뱅의 대안 제시는 명쾌하다. 먼저 그는 교회의 연합이 건전한 교리와 형제애 두 개의 사슬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원용하여 이단자는 거짓된 교리를 사용하여 순수한 믿음을 파괴하는 자이고 후자는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공동체의 유대관계를 깨트리는 것인데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공동체의 유대가 연합된 믿음에 달려 있다고 역설하였다. 그러므로 진정한 하늘나라의 연합은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우리의 의지 또한 서로 간에 선한 의지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4권 2장 5절). 이 연합을 위해 바울 사도가 제시하고 있는 원리는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요”(엡 4:5)라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는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빌 2:2)으라고 하면서 이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빌 2:5)이라고 증언한다. 이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곳에는 신자들의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고 단지 믿지 않는 자들의 분파만이 있을 뿐이다. 칼뱅은 결코 이단자가 아니었고 분파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시다. 키프리아누스(Cyprian)도 교회적 조화의 모든 원천을 그리스도의 유일한 감독직에서 도출하였다. “교회는 하나다. 그것은 다산(多産)의 증가를 이루어 널리 퍼져 간다. 태양의 많은 광선이 있기는 하지만 빛이 하나인 것처럼, 나무에 많은 가지가 있지만 견고한 뿌리에 근간을 둔 줄기는 하나인 것처럼, 하나의 샘에서 많은 시내가 흘러나오는 것처럼 … 태양의 몸체에서 광선을 떼어 낸다고 한들, 그 하나됨에는 어떤 분할도 일어나지 않는다. … 교회는 주님의 빛에 흠뻑 잠겨서 모든 곳으로 퍼져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곳에 퍼진 것은 하나의 빛이다”(4권 2장 6절). 그렇다. 교회의 모든 원천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이외에 그 무엇으로도 교회의 머리를 만드는 곳에는 교회는 없다.

교황제가 교회의 머리가 되어 있는 로마가톨릭교회는 누구에게나 그들의 모든 기도와 성례와 의식에 참여하도록 강제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로마교회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교회에 돌리시는 모든 영예와 권세와 재판권들을 똑같이 그대로 로마교회에 넘겨줄 것을 요구한다(4권 2장 9절). 칼뱅은 이러한 로마교회의 비신앙적 요소를 강력하게 고발한다.

첫 번째와 관련해서는 로마교회가 자신들의 미사에 강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에 대한 고발이다. 칼뱅은 구약의 예루살렘 교회가 부패했었지만 그때에도 선지자들은 어떤 미신적인 예배에도 참여하도록 강요받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짊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편 여로보암 왕 당시에 그 자신이 포고한 규정대로 할례가 남아 있었고, 희생제사들이 드려졌으며, 율법이 준수되었고, 조상들이 하나님께 하던 기도가 드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거짓된 것들과 금지된 것들이 들여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의 드려지는 예배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였고 도리어 저주를 받았다. 그러므로 교회에 속한 경전한 사람들이라면 교회가 불경하고 부패한 예식들로 인해 타락한 경우에는 그런 교회를 무작정 계속해서 따라서는 안 된다.

두 번째와 관련해서는 이사야의 고발이 통렬하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사 1:12-15). 만일에 유대인들의 이런 모임 하나하나가 교회였다고 한다면 엘리야나 미가, 또는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호세아 같은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따돌림을 받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4권 2장 10절). 만일에 이들 선지자들이 기꺼이 부패하고 타락한 예루살렘 교회와 제사장들과 연합하여 예배하였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상숭배와 미신과 불경건한 교리로 오염된 로마교회를 인정하고 교류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가 교회에 부여하신 권세와 영예와 재판권이 무효화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말씀과 불가분의 고리로 연결된 교회의 열쇠로서의 권위가 로마교회에서는 파괴되었다. 마침내 그리스도의 약속을 헛되이 사라지게 하는 교회라면 그리스도의 종들이라고 가식 없이 고백하는 신자들은 그런 교회의 교제로부터 떠나는 것이 마땅하다.

세상에서 참 교회인지 거짓 교회인지는 다음의 사정들에 의해서 명백히 구분된다. 첫째는 하나님이 요구하지 않는 방식으로 교회를 들락거리면서 교회 마당만 밟게 하느냐의 여부다. 그렇다면 거짓 교회다. 둘째는 헛된 제물로 하나님께 분향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면 거짓 교회다. 셋째는 정기적인 모임(예배나 집회)를 하면서 악을 행하는 것이다. 넷째는 하나님이 짐으로 여기실만한 일들을 행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교회 안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느냐 듣지 않으시느냐다. 들으시면 참 교회이고 듣지 않으시면 거짓 교회다. 마지막으로는 예배하는 자의 손에 피가 가득하냐 그렇지 않느냐이다. 피가 가득한 곳은 거짓 교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뱅이 목마르게 세우고자 했던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 위에 터 잡고 서 있으면서 그리스도가 친히 모퉁잇돌이 되시는 교회였다(엡 2:20). 그가 로마교회를 대표로 삼아 거짓 교회를 통렬하게 파헤치며 비판한 이유도 사도적 신앙을 계승하면서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가 모퉁잇돌이 되시는 그런 교회를 사모하며 열망한 때문이었다. 참 교회여! 깨어나 굳게 서라!

 

문노사목사(논설위원)
문노사목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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