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기독교강요 둘러보기(50) - 교황제 미사의 모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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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기독교강요 둘러보기(50) - 교황제 미사의 모독성
  • 문노사 목사
  • 승인 2023.10.04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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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노사목사(전 백석대 교수ㆍ교육학박사, 본지 논설위원)

교황제 미사(the mass)의 하나님에 대한 모독성(불경함)은 그 미사가 죄사함을 얻는 희생제물이자 제사라고 믿게 한다는 데 있다(4권 18장 1절). 교황주의자들은 미사가 그것을 올려 드리는 사제와 그 제사에 참여하는 다른 자들이 하나님께 공로를 얻는 일이자 속죄의 제물이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미사를 행하는 자체가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의 속죄를 위하여 하나님께 보속(補贖-‘죄의 값을 보상하다’ 또는 ‘하나님께 만족satisfaction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값’)하는 일종의 유화의 제도로 수립하였다.

칼뱅은 이 미사를 한 마디로 무효화한다. 미사는 그리스도께 모욕을 끼치고, 그의 십자가를 매장하고 짓누르고, 그의 죽음을 망각하게 하며, 그 죽음으로부터 우리에게 맺혀지는 열매를 걷어버리며, 그의 죽음을 기억하게 하는 성례들을 약화시키고 흩어져 사라지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4권 18장 1절 적용). 그의 이러한 비판은 오늘날의 교회들 역시 미사와 같은 헛된 예배의식으로 그리스도를 모욕하고 망각하게 하고 그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지나 않은지 깊이 살피게 하는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칼뱅이 비난하는 미사의 첫 번째 모독성은 그것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유일하시고 영원하신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모독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구약의 제사장들처럼 일시적으로 제사장과 대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니다. 그는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히 5:6, 10)으로 정해지셔서 영속하는 제사장 직분을 지니셨다(4권 18장 2절). 그런데 교황주의자들은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창 14:18)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자신들이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주는 것으로 둔갑시키고, 멜기세덱은 마치 구약의 제사장처럼 일시적인 직분을 가진 것으로 만들었다. 떡과 포도주는 원정과 전쟁으로 지친 아브라함과 그의 가신들이 활기를 되찾게 하려고 주었던 것이지 결코 희생제물이 아니었다(4권 18장 2절). 그들은 영원하신 멜기세덱을 유한한 존재로 모독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을 유한한 것으로 만드는 불경을 저지름과 동시에 유한한 존재의 제사장들을 계승하고 대리하게 하는 사제들을 임명하는 모독을 저질렀던 것이다. 아울러 멜기세덱이 활기를 되찾도록 하기 위해 주었던 떡과 포도주를 희생제물로 둔갑시켜 참 희생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모독하였다.

미사의 두 번째 모독성은 그리스도가 자기 자신을 희생제물로 삼아서 단번에 드리신 영원한 제사를 부인함으로써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의 의를 받아서 누리는 은총을 앗아간다는 것이다(4권 18장 3절). 그리스도의 희생제물의 능력과 효과는 영원하다. 그것은 오직 한 번만 드려졌다. 그런데 미사는 반복되어야 한다. 그것이 미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효화하는 이유다. 교황주의자들은 미사의 근거를 주님이 때가 이르면 온 세상이 자기의 이름에 향과 깨끗한 제물을 바칠 것이라고 약속하신 예언의 말씀(말 1:11)에서 찾는다. 거짓이다. 모든 예언은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해서 성취되었다. “다 이루었다”(요 19:30)라는 말씀이 그것이다(4권 18장 4절).

미사의 세 번째 모독성은 그것이 언약을 다 이루신 그리스도의 참되고 유일한 죽음을 부인하고 이를 대체하는 무수한 죽음을 요구한다는 것이다(4권 18장 5절). 주님은 우리에게 죄사함과 영원한 의를 주셨던 언약을 자기의 죽음으로써 확정하셨다(히 9:15-17). 그런데 미사는 매번 새로운 죄사함과 의의 획득을 강요한다. 그 말은 그때마다 그리스도가 죽임당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들이 미사는 피 없는 제사라고 아무리 외쳐댄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리스도를 죽게 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4권 18장 5절).

미사의 네 번째 모독성은 그것이 그리스도의 죽음의 열매를 빼앗아 간다는 데 있다. 만약에 미사에서 새로운 구속을 보게 된다면 그 누구도 그리스도의 죽음으로써 자기가 구속받았다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미사에서 새로운 구속을 얻는다면 아무도 자기의 죄가 용서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4권 18장 6절 적용). 그 다음 미사, 그 다다음의 미사를 통해서 새로운 죄의 용서가 끝없이 확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미사 참가자들이 스스로 구속자가 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려서 속죄의 희생물로 단번에 드려진 분은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그는 우리에게 한 번의 제사로 그렇게 하셨다(4권 18장 6절 적용). 미사를 통한 새로운 보속의 약속은 그래서 사기다.

미사의 다섯 번째 모독성은 그것이 보속의 공로를 내세워서 하나님을 빚쟁이로 만든다는 것이다. 교황주의자들은 미사의 희생제물이 하나님께 값을 지불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달리 말하면 그들이 미사에 참여하는 그 자체가 하나님에게 빚진 값(만족)으로 지불받는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선하심을 인정하고 감사해야 하는 곳에서 미사가 악하게도 하나님을 우리의 빚쟁이로 만드는 것에 다름 아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제정하신 성례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단번에 생명으로 회복될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영생함을 약속한다. 그러나 미사의 희생제물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무언가의 유익을 주시려고 날마다 희생제물로 드려지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든다. 미사는 희생제물을 드리는 사제들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리스도 대신에 사제들을 세웠다. 이것이 미사가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의 교회공동체를 해체시키는 이유다. 미사는 결단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성찬과 양립할 수 없다(4권 18장 7절 적용).

‘미사’(the Mass)라는 용어가 어떻게 기원이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칼뱅은 그 기원을 제물들이 ‘많이 모여져 있던 데’서부터 유래된 것으로 추측하였다(4권 18장 8절). 그 하나의 예로 고대인들에게는 ‘미사’가 ‘많은 수’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었다는 사실이다. 억측일 수 있지만 ‘많은’의 뜻으로 미사가 불려야 했던 것은 교황주의자들이 그것을 많이 자주 드려야 자신들의 권위 유지와 재산증식에 유리하기 때문에서인 것으로 보인다.

미사에서 벌어지는 일은 한 사람의 사제가 나누어주고 신자들은 오직 받아먹기만 하는 것이다. 이런 미사는 성경에 없다. 성경은 주님이 세우신 성찬이 떡과 잔을 받아서 나누는 것이며, 참여한 사람들이 떡을 나누어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고 잔을 나누어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증언한다(고전 10:16). 그 성찬의 자리는 희생제물의 제단이 아니라 만찬을 즐기는 식탁이었다. 제자들이 그리스도께로부터 떡과 잔을 받아먹고 마셨으며, 또한 그들에게 그대로 그렇게 하라고 하셨기에 제사장들이 아니라 사역자들이 나누어주는 거룩한 잔치였다(4권 18장 12절 적용). 그러므로 미사는 그리스도가 세우신 성찬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세우신 성찬을 거짓으로 모방한 것이기에 한갓 우상화일 뿐이다.

성찬에서 신자가 드리는 모든 희생제물은 일반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것으로서 죄를 위해 드려지거나 하나님에 대한 예배의 징표와 종교(경건)에 대한 입증으로 드려진다(4권 18장 13절). 모든 희생제물은 하나님의 은혜로써 화목하게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과 죄사함과 의와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이다. 그 희생제물이 은혜와 화목을 다 이루어내신 그리스도 자신이셨다(요 19:30). 그가 제사장의 모든 희생제물과 그들의 사역을 다 완수하셨기에 더 이상의 새로운 희생제물이 필요하지 않다. 그의 분부를 받은 사역자들 이외에 떡과 잔을 나누는 사제가 따로 필요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미사가 사람에게 주는 해악은 사람들을 눈 멀게 하고, 속아 넘어가게 하고, 타락하게 하고 방종하게 하는 것 등이다. 그 실상은 플라톤이 『국가론』 제2권에서 비난한 대로 “속죄물로 인해서 신들의 눈이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기에 자기들의 악행이 줄어들고, 그 신들과 언약을 맺었다고 안심하고 방종하고 타락하며 사악해지는 사람들을 비웃는다.”고 말한 그대로다(4권 18장 15절 적용).

미사가 아무리 많이 드려져서 희생제물이 쌓이고 쌓인다 하더라도 그 제물이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없다. 그것들이 하나님의 진로의 마음을 달랠 수도 없고, 속죄를 얻어낼 수도 없다. 죄를 용서하고 의롭다고 인치시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그리고 이 일은 하나님의 거저주시는 은혜와 그리스도의 단번에 제물되심으로 완성되었다.

신자의 감사의 희생제물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높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스도 이외의 어떤 희생제물도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거나 죄사함을 얻거나 의의 공로를 세우는 데는 전혀 쓸모가 없다(4권 18장 16절 적용). 그리스도의 성찬에서 신자들의 육체적 희생제물, 감사의 기도, 마음의 헌신, 찬송 등의 제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기 위함이다.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러한 제사를 드리는 직분을 감당하기에 왕적 제사장직(a royal priesthood)을 지닌 자들이라 불리는 것이다(4권 18장 17절 적용).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성례는 두 가지다. 하나는 교회에 입문하는 ‘세례’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가 자기의 가족을 영적으로 먹이시는 계속적인 양식인 ‘성찬’이다(4권 18장 19절). 세례는 오직 하나이며 반복되지 않는다. 반면에 성찬은 반복해서 분배됨으로써 한 번 교회에 가입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먹는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구원의 약속이 없는 성례는 절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성례는 성례일 수 없다.

주교나 사제들이 미사라는 중재를 통해서 신자들의 죄를 용서받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고 불경한 일이다. 유다는 단 한 번 은 30에 예수를 팔았다. 그리고는 죽었다. 유다는 한 번 팔았지만 사제들은 매수자가 있을 때마다 자주 판다. 그들은 정말이지 죽을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새로운 제자장직을 제정하지 않으셨다.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히 5:4).

『집사 페트루스를 향한 [삼위일체] 신앙론』의 저자(익명)는 “우리를 위하여 육신이 되신…이제 아버지와 성령과 함께 한 신성을 가지고 계시는 그에게 거룩한 교회는 모든 세상에서 떡과 포도즙의 희생제물을 드리기를 그치지 않는다.…”고 고백하였다(4권 18장 10절). 하나님께서는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않는 제사를 기뻐하신다(히 13:15). 그러므로 신자들의 희생제물이 주님의 성찬에서 없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옛날 이스라엘에게 만나, 바위에서 솟아나는 물, 놋뱀 등을 주시면서 앞으로 더 나은 것을 자신에게 기대하라고 충고해 주셨다(4권 18장 20절). 이 언약대로 그리스도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풍부하고 부요하게 감추신 채로(골 2:3) 우리에게 나타나셨다. 이 시대는 “마지막 때”(요일 2:18), “모든 날 마지막”(히 1:2), “말세”(벧전 1:20)다. 세례와 성찬을 토대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찾아야 한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요 4:23). 이 때를 마주하고 있는 신자들은 오직 한 분 그리스도를 갈망하고, 찾고, 바라보고, 배우고, 익혀야 한다. “영과 진리”(요 4:24)로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문노사목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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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진 2023-10-05 11:28:52
좋은 글 항상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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